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  기영렬 목사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들을 포함해 가족과 주변까지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힘들어 합니다. 코로나의 파괴력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 뿐 아니라 경제의 영역까지 세력이 확장되었습니다. 미국의 많은 지역이 행정명령으로 인해 필수적인 몇몇의 비지니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업체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으로 고통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고통의 문제는 누구나 피할수 없습니다. 악한 삶을 살아왔던 사람이나 하나님께 신실하게 헌신했던 사람이나 모두가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고통이 하나님의 허락으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의 경우, 사단이 그를 시험해서 고통을 당했지만,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사람을 통해서 고통을 겪었지만 성경에서는 이를 허락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허락하실까요? 바울을 통해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요즘으로 말하자면 잘나가는 안디옥교회의 담임목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선교사가 되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은 이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선교여정에 함께 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기가막히고 애매한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누명을 쓰고 로마의 빌립보 감옥에 갇힌 사건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가서 루디아를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 구원의 길을 전하는 사람이다 라고 소리치는 것입니다. 칭찬 같지만, 귀신들린 사람이 그렇게 하니 복음전도에 방해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쫒았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귀신 들린 여인의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고소한 것입니다. 여종을 이용해 돈을 벌던 주인이 더 이상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피가 터지도록 매를 심히 맞고 깊은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바울에게 왜 이런 고통이 찾아왔을까요? 성경을 더 읽어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찬송과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착고가 풀어지고 옥문이 열리자 죄수의 탈옥을 직감했던 간수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바울은 간수앞에 나서 여기있다고 하고, 간수의 마음이 열려 예수님을 믿고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은 간수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실라가 애매한 고난을 통해  천하를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생명을 구원 받게 한 것입니다.

 

이런 예는 요셉의 삶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려 보디발의 종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다가 감옥에 들어가는 비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얼마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극심한 기근에서 애굽사람과 가족의 생명을 구해 이스라엘을 세우는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고통을 통해 애굽과 이스라엘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생명은 고통을 통해 탄생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출산할때 산통을 겪습니다. 산통은 여성들이 격는 통증 중에 가장 크다고 합니다. 출산의 고통은 산통 뿐 아닙니다. 임신하고 얼마 안 있으면 입덧이 시작됩니다. 어떤 어머니는 십개월 내내 입덧을 해서 살이 몇킬로 빠지는 분도 있습니다. 그 고통의 끝에 아기가 태어납니다. 생명은 고통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얻는 생명의 구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의 고통 당하심으로 믿는 사람이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고통 받을 이유가 한가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이 오기 전까지는 현실에 집착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다 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고통이 오면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명이 유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창조주를 생각하게 됩니다. 고통은 영감을 깨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게 하고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닫게 합니다. 고통은 생명을 출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인간이란 평안에 젖어 살면 온실에서 자란 화초처럼 유약해지기 쉽습니다. 오늘날 부모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애완견이 죽었다고 자살하는 청소년,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은 고난을 잘 모르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강인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난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강한 그리스도인은 고통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밥입니다.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 연약한 것처럼 고난을 먹고 소화시키지 못한 신앙인은 약할 수 밖 에 없습니다. 역경을 많이 당하고 기도를 통해 극복 한 사람은 어떠한 고난이 와도 파멸당하지 않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가운데에만 있던 사람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큰 시련이 닥쳐오면 지고 맙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맡기려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의 바다 위를 지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 년을 광야에서 고난받았습니다. 다윗도 12년을 사울에게 쫓기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야곱도 20년동안 갖가지 시험을 받았으며 환도뼈가 어그러지는 고난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요셉 같이 의롭고 깨끗한 사람도 13년동안 고난받았으며, 모세와 같은 지도자도 40년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았고 강한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시편의 저자는 119편 71절과 72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스펄전은 고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가장 아름 다운 노래는 찢어진 마음, 상처난 가슴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보자고 하시는 것은 우리가 딴 메달이나, 학력이나, 자격증이 아니요 우리의 상처다

하늘로 가는 길이란 갈보리에 접어들어 곧장 그 길로 행하는 것이다 

하늘의 면류관을 쓴 자중에 이땅에 가시관을 쓰지 않은 자가 없다.

 

톨스토이는 세상이 계속 발전해 가고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고난 받는 사람들의 공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고난은 믿음의 사람들을 강하게 만듭니다. 여러번 정련된 금이 값이 많이 나가 듯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강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지금은 모두가 고통을 당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다윗이 고백했듯이 이곳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시고 그분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고난의 때에 불평과 원망이 아닌 감사로 우리의 삶을 세워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