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타이어, 큰 타이어 : 감사의 비결
일곱 살 짜리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에 놀러간 엄마가 있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아이에게 사과를 먹으라고 주었다. 아이는 사과를 받더니 인사도 없이 먹으려고 한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째려 보면서 묻는다. “누군가가 사과를 줄 때는 뭐라고 해야 되지?” 아이는 잠깐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이웃집 아주머니를 쳐다보면서 말한다. “껍질 벗겨 주세요”
이 이야기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풍자한 이야기이다. 구하고 바라는 것은 잘하지만 감사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꼬집은 비유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감사를 가르쳐 준다.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감사할 때 어떤 능력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감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표적인 본문은 누가복음 17장의 나병에서 치료받은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이다. 오늘은 그 말씀 속에서 감사하는 삶의 비결을 찾아보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나병환자들이 모인 마을에 들어가신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열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나병 환자는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살수 없었다. 정상적인 사람 가까이도 갈수 없었다. 랍비들의 지침서에 나병 환자는 정상인에게 100 걸음 이상 가까이 가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이들은 멀리서 예수님에게 소리친 듯 보인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가가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즉시 마을로 달려 간다. 율법에는 나병에서 나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로 마을로 못 들어간다. 제사장에게 보여서 반드시 완전히 나았다는 확인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나병환자들의 병이 모두 치료된 것이다. 고향으로 향하던 그들의 발걸음은 더더욱 가벼워 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마리아 사람은 가던 길을 돌이켜 예수님에게 온다.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치료해 주신 예수님에게 은혜에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한다. 예수님은 그에게 묻는다. 열명이 다 치료받았지 않았느냐?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리고 선포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시고자 하는 것은 감사의 중요성이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왜 감사하는 사람을 찾으실까? 하나님은 감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속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시편 50편에서는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감사는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감사는 우리의 삶에 선물을 가져다 준다. 감사했던 사마리아인은 구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았다. 나머지 아홉은 나병에서 치료를 받는 기적을 경험했지만 구원을 선물로 받지는 못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를 가져온다. 사무엘의 어머니였던 한나는 기도해서 얻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린다. 얼마 후에 하나님과 엘리에게 감사했을 때,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얻는 선물을 받았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서도 감사했을 때, 간수를 구원하는 은혜를 얻게 되었다.
오늘날도 감사는 더 큰 감사를 가져온다. 선물을 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시하면,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기쁨이 배가된다. 가족들이나 직장 동료들에게 작은 일이라도 감사할 때, 하루 하루가 기쁨의 생수로 채워지게 된다.
하지만 감사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 삶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 덩어리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감사하며 살수 있는가? 비결은 삶의 포커스를 예수님에게 맞추는 것이다.
열명의 환자들은 나병에서 치료를 받았다. 얼마나 어마 어마한 일인가? 그들은 예수님이 구원자 메시아임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은 자기 마을로 돌아가고 사마리아인만 와서 감사를 드렸다. 왜 일까? 그들은 나병이라는 큰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병이란 문둥병으로 살이 썩어 저주받은 병이다. 가족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죽을 때까지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병이다. 그 병이 치유되었으니 얼마나 감격이 컸겠는가?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치유의 원천이었던 예수님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지구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문제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다면, 우리를 사랑하시고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 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된다.
비록 많은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고, 몇몇 사람 때문에 낙심케 될지라도, 삶의 포커스가 예수님에게 맞추어져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은 본질 이신 예수님을 붙잡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그 결과 환경에 의해 우리의 감사가 흔들리지 않는다.
칭찬받을 때는 날아갈 것 같다가 한마디의 충고나 비판으로 삶의 회의를 느끼고 우울함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환경에 의해 감사가 좌우 되는 사람이다. 반대로 영원한 구원의 소망 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다면 삶의 무게와 상관없이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작은 자동차의 타이어는 도로의 작은 흠이나 홀에도 큰 손상을 입는다. 하지만 도로에 흠이나 홀이 있어도 타이어가 크면 잠깐 덜컹하고 지나간다. 인생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 안에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들은 큰 타이어이다. 삶에서 오는 문제와 아픔들이 우리를 침몰시키거나 절망하게 만들 수 없다.
하나님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셨다. 이 복음 안에 인간의 참된 감사의 비결이 숨겨져 있다.
기영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