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하나님의 심판인가?
코로나 19의 감염 상황이 심각하다. 4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95,000명 이상이 확정 판결을 받았다. 미국에도 점점 더 많은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워싱턴주는 벌써 아홉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텍사스는 아직 사망자가 없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중국 우환을 방문했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한명이 샌아토니오의 군병원에서 음성판정을 받고 격리에서 해제되었다가, 다시 양성판정을 받음으로 샌안토니오는 현재 비상을 선포한 상황이다.
한국의 상황은 이미 매우 심각하다 4일 현재, 5천6백명이 넘는 사람이 확진 판결을 받았다. 많은 교회들이 예배를 중단하고 대구와 경북의 도시들은 적막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심각해 보이는 또 하나의 갈등이 코로나와 함께 부상했다. 그리스도인들의 코로나에 대한 이해의 차이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코로나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단정짓고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코로나를 그렇게 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부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먼저 전염병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는 입장을 살펴 보자. 한국의 다수의 목회자들은 코로나를 하나님의 심판의 입장에서 본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중국이나 신천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이를 지지하는 듯한 구절들이 무척이나 많다. 다윗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은 전염병을 통해 7만명을 죽이셨다. 이스라엘이 모압여인과 음행하다가 2만4천명이 전염병으로 죽었던 일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도 생각할 때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정말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병에 안 걸려야 정상 아닌가? 왜 하필 교회는 예배모임 조차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인가?
성경은 전염병이나 재난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의도에서 재앙을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다. 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욥은 하나님을 정말 잘 섬기는 신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녀들이 범죄했을까 염려하여 그들의 생일때마다 번제를 드릴 정도였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땅에서 욥만큼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뢰하는 사람이 없다고 자랑하셨다.
마귀는 하나님이 축복을 주셔서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만약 그의 재물을 가져가면 분명히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사단이 욥의 재물과 자녀들을 치는 재앙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욥은 주신자도 여호와 이시고 취하시는 분도 여호와이시니 주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지킨 욥을 사단앞에서 칭찬하자, 사단은 욥의 몸을 건드리지 않아서 그렇다고 변명한다. 하나님은 그의 생명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시고 이번에는 욥이 엄청난 피부병에 걸리는 것을 허락하신다. 종기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병이 생겨 욥은 큰 고통을 겪는다. 너무 힘들어서 깨진 그릇 조각으로 아픈 곳을 긁어야 할 비참한 상태가 된다.
욥은 왜 이런 고통을 당했는가? 그가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한 것인가? 아니다. 욥기를 읽어보면 욥의 친구들은 욥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회개하라고 권고한다. 이러한 권고는 더욱 욥을 힘들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욥에게 시험과 고통을 허락하셨다. 이유는 단순히 마귀와 내기해서 이기려고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마귀에게 욥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허락하시면서 의도하신 것이 있었다. 하나님은 욥이 하나님을 절대자로 이해하는 것을 원하셨다. 그분이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생사화복의 주관자이며, 우리의 판단과 생각을 뛰어넘어 온 우주를 주관하는 분임을 알게 하시기 원하셨다. 욥은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축복을 갑절로 받는다.
사람들은 좁은 소견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때 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시각 장애인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답하셨다. 그리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 그는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수 있었고 그의 기적을 체험했다. 어쩌면 늘 앞을 보았던 사람보다 그는 더 큰 은혜를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의 장애와 질병은 심판과 저주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질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은 연약함과 질병을 통해 사랑하는 자의 생명을 거두신다. 예수님은 연약함과 질병을 치유하실 때와 그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때를 묘사하기 위해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의 행위를 끊으시고 그것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신다. 정죄가 아닌 구원을 하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일어나는 재앙을 함부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2004년, 30만명이 죽었던 인도네시아의 쓰나미에 대해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무슬림권을 심판하신 것이라고 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았던 사건이 있다. 아마 그 일로 고통받고 있던 나라와 유족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렇게 쉽게 할 수 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런 말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조심해야 할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리스도인들 또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심판을 받고 있을 때, 과연 우리는 심판받지 않을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비록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에서 용서받고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연약함 속에서 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사건에 대해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적이 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이들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처럼 다 망하리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계적인 재난과 고통이 닥칠 때, 먼저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여 회개해야 할 죄가 없는지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함께 울어 주어야 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상황은 이러한 재난에 대해 남의 탓을 하기 바쁘다. 그리스도인들마저도 누구의 죄인지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어떤 사람은 대구 경북의 우상숭배를 탓하기도 하고, 신천지를 문제 삼기도 한다. 중국의 기독교 핍박이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모두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지 살펴보라는 주님의 경고로 들린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라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들린다. 나아가서 과학과 의학을 맹신하고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들이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들린다.
기영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