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 분별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방법
성경에는 거짓 선지자들에 관해 자주 언급되어 있다. 예수님은 말세의 징조를 설명하시면서 “거짓 그리스도 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주어 할 수만 있다면 그 택함 받은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24:24)” 고 경고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탁월한 언변, 기적 행함, 계시와 예언, 병자를 고치는 능력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약 60년이 지난 AD 90년경에는 실제로 많은 거짓 선지들이 등장했다. 요한 사도는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상당수의 신약성경은 초대교회 당시 교회를 흔들고 신앙의 혼란을 주던 거짓 선지자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다. 자세히 읽어보면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에 미친 해악이 얼마나 크고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이후 거의 2000년이 흐른 오늘날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현재 한국의 개신교 인구는 약 930만 명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단 연구가들은 그 숫자의 약 20%는 이단 교파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조금 단순화시키면 다섯 명 중의 한 명은 이단 교파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통교회의 교파 안에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목회자들이다. 이들을 분별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그들 중 상당수는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사역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거짓 선지자들을 구별해 낼 수 있을까? 거짓된 사역자들이 자기 이마에 ‘나는 거짓 선지자’라고 써 붙이지 않는 한 그것은 절대 쉽지 않다. 그들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처럼 큰 표적을 보이기도 하고 이적을 보여줄 수 있고, 탁월한 설교자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방법이 열매를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7:16)”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잎과 줄기만으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때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떤 목회자나 사역자가 참 하나님의 사람인지는 삶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기적을 잘 행하느냐? 귀신을 잘 쫓아내느냐, 설교를 감동적으로 하느냐는 분별 기준이 아니다. 물론 잘못된 이단 교리를 설교를 통해서 직접 드러내는 일도 있지만 말이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린도후서 11:13-15)”고 했다. 행위가 평가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불법이란 주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부도덕하고 말씀에 어긋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주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행했지만 삶은 불법으로 가득하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되는 악이다. “불법을 행한다”에서 “행한다”는 헬라 원문에 현재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형은 반복을 말한다. 계속해서 불법을 반복하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탁월한 설교자라는 사람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여자들에 대한 성 추문에 휘 말리고, 폭력적이고, 돈을 너무 사랑해서 돈에 미쳐 있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를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디모데 후서에서는 말세에 피해야 할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2~5)”
로이드 존스 목사는 거짓 선지자에 대한 여섯 가지 특징에 대해 언급하면서, 거짓 선지자들은 좁은 문과 좁은 길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이 설교 시 침묵하는 진리들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 둘째, 심판과 지옥, 셋째, 죄의 사악성, 넷째, 회개의 필요성, 다섯째, 성결한 생활, 여섯째, 자기기만의 위험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이러한 내용을 잘 언급하지 않는 것은 죄의 심각성에 대해 그들 자신이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삶이 어떻든 그리스도인은 축복을 받는 사람이라고 만 말한다. 거룩하고 경건한 삶이 믿음을 드러내는 실체임을 강조하지 않는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 이익과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거짓을 예언하면서도 자칭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전파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자신이 스스로 속아 자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지금은 시대를 분별하고 목회자와 사역자들을 분별해야 하는 시대다. 베뢰아 교인들은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지만, 그 말씀이 올바른 말씀인지를 분별하는 사람들이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17:11)”
지금은 매우 혼란한 시기다. 진리를 분별해서 취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누가 참 선지자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따라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답은 간단하다. 그들의 삶의 열매를 보는 것이다.
<뉴스코리아 칼럼 기영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