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신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신가? 아니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신 것인가?
프랑스의 작가 까뮈의 오해라는 작품은 오해가 가진 파괴력을 이렇게 표현한다. 남매를 기르던 가난한 어머니가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아들이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린다. 어머니는 집을 나간 아들을 그리워하며 가난을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다가 강변에서 여관을 운영하게 된다. 하지만 돈에 눈이 멀어버린 어머니는 딸과 함께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다. 투숙객에게 수면제를 먹여 죽인 후에 시체를 강물에 던지고 돈을 빼앗는 방식이었다. 한편 집을 나간 아들은 성공해서 돈을 벌었고, 신분을 감춘 채 고향 마을로 돌아와 여관에 투숙하게 된다. 그가 아들인 줄 상상도 못했던 어머니는 그에게 수면제를 먹여 강물에 던져 죽인다. 지갑을 뒤지다가 신분증을 발견한 어머니는 자신들이 죽인 남자가 꿈에도 기다리던 아들인 것을 알고 절망한 나머지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만다. 딸도 그 뒤를 따른다. 오해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성경은 수많은 사람들이 읽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생의 사용설명서이다. 1600여년의 긴 기간 동안 기록되었으면서도 모순이나 충돌이 없다. 수많은 예언이 성취된 것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성경을 따라 산 사람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 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을 읽다 보면 혼란스러운 부분이 자주 나타난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믿음의 대상 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부분이다. 처음에 교회를 갈 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교회를 다닌다.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께서 낳으셨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다가 예수님에 대해 조금씩 배울수록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시다는 것을 배울 때이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위 구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본체로 말씀한다. 본체라는 말은 헬라어로 모르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모르페라는 단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쉽게 말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되신다 고 말씀하고 있다. 동등 되다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레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에 비해 전혀 열등하지 않다는 뜻이다.
기독교의 정통 교리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를 가지신 아버지와 동등 하신 하나님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오해한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 아버지가 사람이 되어 예수님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주장이다. 이들에 의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인 셈이다. 이것은 양태론 이라고도 부른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주장하다가 261년 이단으로 정죄 받은 사람이 사벨리우스이다. 오늘날도 아버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역할론을 주로 주장한다. 아버지가 집에 있으면 아버지, 직장에서 있으면 직원, 교회에서는 집사 이런 식으로 설명하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심각한 오해이다.
두번째 대표적인 오해는 아리우스 주의라고 불리우는 양자론의 주장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첫번째 피조물이다. 아버지께서 신적인 특징들을 아들 예수에게 주었고, 예수는 너무나 도덕적으로 거룩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처음에 이를 주장한 사람은 데오도투스이다. 이것이 나중에는 아리우스로 이어졌고 320년에 교회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 되었지만 계속 영향을 끼쳐서 325년에는 니케아 회의에서 다시 확인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여호와 증인들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성자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10장30절의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하는 성경말씀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1절-2절의 말씀이다. 여기서 나타난 말씀은 로고스이고,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예수님 이시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아리우스의 주장대로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철저하게 복종하시는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 하신 분이지만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기 까지 복종하셨다(빌2:8).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시기도 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는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부르 짖으셨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만약 예수님이 아버지와 동등하시다면 있을 수 없는 일 처럼 보인다. 우리는 어떻게 이 모순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은 동등과 복종의 연관성의 문제를 이해하면 된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일반적으로 복종은 동등 된 사람 관계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은 동등하지만 복종해야 하는 관계가 등장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부부의 경우이다. 그들은 동등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했다. (엡6:1) 동등하지만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요셉과 마리아인 육신의 어머니에게도 복종하셨다.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기도 하셨다. 이것은 복종하는 것이 열등하다는 것이 아님을 말씀해 준다. 오히려 복종은 능력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동등 하신 분이었지만 스스로 복종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신 것이다.
기영렬 목사